탐미치전(貪美痴傳) by 유리양파






백운산(白雲山) 아래에 한 어리석은 자가 있었으니, 말수가 많지 않아 자신을 표현하는 데 능숙하지 않았고, 사람을 대함에 있어 부끄러움이 많아 원활한 대화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마음이 약하고 행동이 소극적인 탓에 보는 이로 하여금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때가 많았다. 말수가 적은 것은 허언(虛言)을 피하기 위함이요, 사람을 향한 부끄러움은 그를 대면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이니, 그 심약한 성정의 연원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데 유독 스스로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 앞에서는 말이 많아지고 아집이 생겼으니, 이는 아름다움을 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장을 읽더라도 폐부를 찌르는 아름다운 구절에 이르면 그 기쁨을 감당하기 어려웠으며, 길을 가더라도 그 시선을 잡아끄는 아름다운 것이 있으면 그로부터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혹 그가 아름답다 여기는 것을 부정하는 이가 있으면 얼굴이 붉어지고 숨소리가 거칠어져 그것을 반박하려 애썼으며, 스스로의 미관에 반하는 것을 보았을 시에는 탄식하며 심히 괴로워하였으니, 그가 아름다움을 탐함이 이와 같다.

일찍이 한 노옹(老翁)이 그 관상을 보며 말하기를 “콧날이 유려하며 눈매가 깊고, 아래 눈꺼풀이 도톰하되 붉은 기운이 도니 이는 곧 공상(空想)하는 힘이 풍부한 상이다. 그러나 입술이 얇은데다 그 빛이 엷고, 눈 주위에 어두운 기운이 스며 있으며, 하관이 빨라 여유가 없으니 이로 미루어 마음의 그릇이 크지 않음을 알 수 있겠다. 혹 작은 재능이 있다 하더라도 그 재능이 해롭게 작용할 소지가 다분하니, 그대는 마땅히 이를 경계하여, 부지런한 배움으로 마음부터 다스려야 할 것이다”라 하였다. 그러나 노옹의 말이, 허황되고 어지럽기에 아름답지 못하다 여겨 새겨듣지 않았다.

아! 허황되고 어지러운 자는 과연 누구인가. 무릇 아름다움은 참됨이 피어난 자리에 올라타는 것이니, 아름다움(美)의 뿌리는 참됨(眞)에 있다 하겠다. 참됨이 발(發)하지 않은 자리에 선 아름다움이란 공허하며 일시적일 뿐이다. 스스로 마음이 이끌리는 것만을 아름답다 여기되 그 본질을 궁구(窮究)하지 않았으니, 이는 곧 아름다움에 도취되는 순간의 쾌락만 알았으되 그 아름다움이 서는 토대를 알지 못한 것과 같다. 능히 탐미치(貪美痴)라 이를 만하지 않겠는가.

그 전(傳)을 엮어주는 자가 없으니, 이에 스스로 글로 적어 남은 생을 살아가는 자세를 다잡으려 하는 것이다. 이렇게 전을 엮는 자는 누구를 이르는가. 광양사람 ㅇㄱㄷ이다.




*계절학기 수업 때문에 쓴 글. 이덕무의 '간서치전'을 참고하여 자기를 소재로 한 傳을 써 보는 과제 아닌 과제다.
이 글의 탐미치가 나와 100퍼센트 일치하는 건 아니다. 글의 맛을 돋우기 위해 극화시킨 부분이 많다.(특히 관상부분은 개드립임. 호호) 하지만 이 글로 남은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다잡으려 한다는 진술은 유효하다. 그러니까 이 글은 나를 과잉시킨 글이되 나를 향한 글이라는 말. 그나저나 한문번역투의 글쓰기는 확실히 재밌는 시도인 듯하다.

*이 분야에서는 이미 조태치 선생께서 선구적인 업적을 남긴 바 있다. (
http://leer.tistory.com/477)
모두 완성한 후 두렵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태치선생께 이 글을 보이니, 선생은 "얼굴이 붉어지고 숨소리가 거칠어쳐 그것을 반박하려 애썼으며"라는 구절을 짚으며 파안대소하였다. 겨우 웃음을 다스리며 선생이 말하기를, '탐미치보다는 오덕치가 더욱 합당한 표현일진저'라 하며 다시한번 껄껄껄 웃었다. 아! 선생은 오늘도 새벽늦게야 잠든 후 오후 네시가 지나서야 일어나는 것으로 언행의 일치를 보여주고 있는데, 하찮고 어리석은 이 몸은 말하는 것에서부터 거짓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 어찌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있으랴.






덧글

  • leer 2010/07/25 04:57 # 삭제 답글

    으잌ㅋㅋㅋ "이건 오덕치전이야!"라고 댓글 쓰려고 들어왔는데 이런 후기는 뭐얔ㅋㅋㅋㅋ
    ....하 지금 시간 오전 다섯시가 되어 가는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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